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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미뤘던 프리뷰 여행을 떠납니다. 주말 비소식에 또 망설여집니다. 다행히 금/토요일에 비가 내리고 산행하기에 더없이 좋은 일요일 아침입니다. 가을비와 함께 제주의 가을이 더욱 익었습니다. 자동차는 한라산 중산간을 가르는 산록도로를 한 숨에 달립니다. 길가에 핀 코스모스와 억새가 유혹의 손짓을 보내지만 이를 뒤로 하고 노꼬메에 이릅니다. 제주도의 동쪽에 다랑쉬가 있다면 제주도 서쪽에는 노꼬메가 있습니다. 제주도에 와서 한라산 백록담, 영실을 오르지 못했더라도 다랑쉬 노꼬메만 오른다면 제주도의 반을 본 것과 진배없습니다. 제주의 가을은 단풍과 함께 찾아오지 않습니다. 제주도의 가을은 억새와 함께 몰래 찾아옵니다. 제주의 바람도 억새는 시기하지 않는 듯합니다.


노꼬메오름은 편도 2.3km로 여느 오름들보다 다소 긴 산책로를 가집니다. 가장 아름다운 오름은 아니지만, 길을 걷다보면 노꼬메만큼 기승전결이 뚜렷한 오름도 없습니다. 주자창에 내려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떴는 마방목지를 지나면 이제 숲길이 시작합니다. 숲길은 가파른 오르막으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구름 위를 걷는 듯한 억새길로 이어집다. 그 억새길의 끝에 하늘과 맞닿아있습니다. 코스는 약 600m씩 A, B, C, D 네개의 구간으로 나뉩니다. ABCD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기승전결이라 표현하는 것이 더 나을 듯합니다. 


시작은 참 평이합니다. 주차장에서 마방목지 중간을 가로지르는 아스콘길을 걷습니다. 운이 좋으면 또는 나쁘면 말들과 함께 걸어갈 수도 있습니다. 이름난 오름의 주변에는 마방목장이 많습니다. 오름의 주인이 사람은 아니다라는 걸 말해주는 듯합니다. 말들은 별로 무섭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길 위에 놓인 수많은 지뢰는 잘 피해야 합니다. 그렇게 조심스레 마방목지를 빠져나가면 많은 무덤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제주도에서 무덤은 그리 낯선 광경이 아닙니다. 예로부터 부모님의 묘지를 평소에 자주 다니는 집이나 밭 근처에 그대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입도 초기에는 사무실 테라스에서 보이는 무덤들이 다소 어색했지만 지금은 이 또한 제주의 멋으로 생각합니다. 오래 전부터 이 묘지터를 중심으로 리조트 개발 계획이 잡혀있는 듯합니다. 다양한 위락시설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굳이 아름다운 중산간의 오름 아래에 그런 시설이 들어와야할까요?


무덤들을 옆으로 하고 이제 숲길로 들어갑니다. 마방복지가 평지길이었다면 이제부터 오름이 시작됩니다. 승의 단계로 접어든 것입니다. 오름이 시작되었다지만 가파르지 않은 평범한 숲속의 산책로입니다. 치톤피드가 몸 속으로 마구 들어오는 기분입니다. 그래서 한결 몸도 마음도 가벼워집니다.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제주의 검은 흙과 낙엽을 밟지 못한다는 점이 다소 아쉽습니다. 숲길 중간중간에도 산담으로 잘 정비된 무덥들이 보입니다. 여기쯤에서 악마 해설사님께서 제주의 자연, 문화, 역사에 대한 장광설을 펼치는 모습이 상상이 되어 피식 웃고 맙니다.


치톤피드에 취해서 길을 걷다보면 이제 다소 힘겨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결의 단계에 이른 것입니다. 이미 1km를 넘게 걸어왔기에 돌아가기에도 너무 늦었습니다. 노꼬메를 여러번 찾아왔지만 여름 내 운동을 전혀 하지 않은 저질의 제 몸이 한 500m 이어진 오름길을 감당하기에는 힘이 조금 부칩니다. 100m를 오르니 제1쉼터가 나옵니다. 사나이의 자존심으로 가볍게 무시하고 계속 오릅니다. C코스의 300m 지점에 올랐을 때, 내려오는 초등학생이 제게 말을 겁니다. '쪼금만 더 올라가면 다 왔어요.' 그 어린이의 눈에도 제가 안스러웠나 봅니다. '알아'라고 시크하게 대답해주고 계속 오릅니다. 나무숲 사이로 불어오는 제주의 가을 바람이 제게 힘을 보태어 줍니다. 그렇게 오르다보면 제2쉼터가 나오는데, 그렇다면 이제 거의 다 오른 것입니다. 조금만 더 힘을 내면 하늘을 걸을 수 있습니다. 낮은정상에 다다르니 지난 태풍에 무너진/부러진 관목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C코스는 오를 때 조금 힘들 수도 있지만, 내려올 때 물기가 있으면 미끄러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리 등산/운동화를 준비해둬야 합니다. 조금 엄살은 부렸지만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들도 부모님의 손을 잡고 많이 오르내리는 곳입니다.


오름길은 더디어 결론에 이어집니다. 억새가 보이고 또 저 너머로 주변의 많은 오름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구름에 가렸지만 멀리 한라산 백록담의 서벽의 위용도 느껴집니다. 가을 햇살을 머금은 억새를 따라 능선을 걷습니다. 한걸음 한걸음이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합니다. 뜨거운 태양의 기운을 받으며 하늘로 하늘로 오릅니다. 마침내 정상에 다다르면 제주도의 북서쪽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멀리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수평선, 그리고 오름이 만들어놓은 구비구비 오름능선… 이것이 제주의 참모습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오르멍들어멍 기타 소리가 울려퍼진다면… 상상이 되시나요?


주차장에서 바라본 노꼬메오름



어린 아이를 포함한 가족 단위의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곳입니다.



정상의 억새길은 구글에 닿아 하늘에 이릅니다.



글 & 사진: 정부환 http://www.facebook.com/falnl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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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ahnies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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